19. 주님께 올리는 기도 분향 같게 하옵시고

(가톨릭평화신문)


프랑스에서 전철을 타고 다닐 때, 좌석에 앉아서 다니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마침 비어있는 자리가 보여 앉았다. 힐끗 옆을 보니,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차림새가 넉넉해 보이지 않는 한 부인이 앉아 있었다.

많은 승객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하철. 휴대폰을 살피거나, 통화하거나, 열심히 책을 읽는 풍경이 일상이다. 그러기에 요즘은 전철을 타더라도 누가 옆자리에 앉는지 관심조차 없는 것이 프랑스의 전철 분위기이다. 한국의 지하철 모습도 이곳과 같을까.

서로 소통이 없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옆에 앉아있는 부인과 나는 아무런 소통의 도구가 없다. 오늘날 이런 모습이 인간의 소통이 돼버렸다. 지금의 세대에겐 인간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지.

그런데 조용히 있던 부인이 주머니에서 동전 한 닢을 주섬주섬 꺼낸다. 그리고 수줍은 표정으로 ‘50쌍팀’을 내 손에 쥐여주는 게 아닌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쌍팀(Centimes)은 동전을 세는 단위로 영어 센트(Cent)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로, 100쌍팀이 약 1유로에 해당한다. 50쌍팀은 한국 돈으로 650원 정도다. 커피 자판기에서 작은 컵의 커피 한 잔 값이 80쌍팀이다.

나는 즉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느닷없이 건넨 이 동전은 우리 돈 1만 원보다 더 값지다.’ 수도자가 자신의 옆에 앉는 모습을 보며 기도를 청해야겠다는 마음의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나 보다.

그런데 잠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보는 부인의 돈을 홀랑 턴 것은 아닌지. 그러나 궁핍한 주머니 사정에도 이 여성은 귀한 동전 한 닢을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과연 어떤 삶의 힘겨움이 그녀를 내게 다가오도록 만들었을까. 나의 마음도 이내 이 소박한 부인에게 열렸다. 막간 대화가 시작됐다.

“파리에 사세요?” 하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왔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저는 올해 68살이에요. 남편은 제가 50이 될 때 세상을 떠났고, 자녀는 넷, 그러니까 1남 3녀가 있어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 분가한 자식들은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요.”

말끝에는 한숨이 들려왔다. 그녀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고, 자녀들은 홀로 된 어머니 곁을 두고 훌훌 다 떠난 것이다. 소식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고된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자녀들을 향해서는 한마디 비난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한국인이나 이들이나 마찬가지이다. 서양 문화의 특성상 많은 젊은이가 일찍이 독립심을 갖고, 각자도생 격으로 험난한 삶을 시작하지만, 멀리 떨어진 부모가 자녀의 안위와 건강을 걱정하고 자녀를 만나지 못할 때 슬픔과 허전함은 매한가지이다.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이 여인은 작은 믿음 안에 착하고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나 또한 협소한 전철 안에서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음에 감사했다. 믿음의 여인은 간절히 기도를 원했고, 마침 내가 곁에 다가가 앉게 된 것이다. 나도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이 여인처럼 주변 자매 수녀님들과 이웃에게 기도를 청하고 싶다.

“주님, 당신께 부르짖으니 어서 저에게 오소서. 제가 당신께 부르짖을 때 제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여기시고 저의 손을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시편 141,1-2)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