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 남은 것에 감사하라

(가톨릭평화신문)
▲ 임상만 신부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이 두 차례에 걸쳐 나오는데, 우선 13장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에는 지상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고, 후반부21장과 22장 그리고 오늘 복음 25장은 하느님 나라를 통해 곧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심판에 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다가올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 나라를 성실하게 준비한 사람들보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무시하고 오직 옛사람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유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핵심은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이 벌었기에 칭찬받았다는 내용이라기보다는 한 탈렌트만 받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외면하고 땅에 묻어버린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한 책망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결코 적지 않은 한 탈렌트나 되는 돈을 받은 종이 왜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전락하였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30억 원 정도의 엄청난 금액을 받았음에도 다른 종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적게 보였고 자기 능력에 비해 턱없는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주인의 성실한 종이 아니라 주인의 반대편에 서서 그와 맞서보려는 잘못된 판단으로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직후 의료사고로 뇌성마비가 된 시인 송명희는 그의 찬양시를 통해, 자기는 남에게 당연히 있는 그 무엇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느낄 수 없는 ‘보는 마음’과 주님의 말씀에 기울이는 ‘듣는 마음’이 있기에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고백하고 있다. 가진 정도에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이미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음에 늘 감사했다는 것이다.

복음에서는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게으른 종을 악한 종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 사람의 몸이 게으르다고 해서 그의 혀까지 게으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사람일수록 그의 입은 불평하는 것으로 분주하고 모든 일에 핑계를 대느라 매우 바쁘기 때문이다. 이 게으른 종도 주인을 비판하기에 매우 바쁜 모습을 보인다. 성실한 종들은 단지“주신 것으로 더 벌었습니다”(20절, 22절)라는 말이 전부였지만, 게으른 종은 계속 불평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느라 말과 핑계가 많아서 그의 혀가 분주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옛말에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성실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성실하지만,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성실하다”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작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했기에 일어난 기적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성실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생활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