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50)엄마 찾아 삼만리

(가톨릭평화신문)


지난 글에서 임종을 앞둔 분들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사실을 가장 후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일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정신분석학자이며 소아정신과 의사였던 도널드 위니컷(1896~1971)을 떠올리게 된다. 위니컷은 평생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치료했던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상담자였다. 그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왜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는 길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양육자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 처하는지에 따라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맞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안아주는 어머니(enough good mother)를 만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을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로 인식하며 통합된 자아상을 확립한다.

하지만 아이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되면 성장하면서 자신의 결핍된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 안에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단점은 애써 숨기고, 사랑받을 것 같은 장점은 최대한 부각하며 거짓된 자아상을 확립한다.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에 드는 자신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신(true self)이 아닌 거짓된 자기(false self)로 타인 앞에 서면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에게 맞추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남에게 맞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깊은 회한이 밀려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976년, 지금은 사라진 TBC 방송에서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애니메이션을 즐겨보았던 기억이 난다. 1880년경 이탈리아 항구 제노바에서 가계 일을 돕고 있는 9세 소년 마르코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머나먼 남미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떠난 뒤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나선다. 마르코는 우여곡절 끝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바이아블랑카, 로사리오를 거쳐 오지인 콜도바까지 여행을 했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지 못해 절망한다.

바로 그때 가난한 인디오 소년 파브로가 목적지도 없이 헤매는 마르코에게 묵을 곳을 제공해 준다. 파브로에게 도움을 받은 마르코는 은혜를 갚아야 할 상황에 처한다. 파브로의 여동생 파오나가 치료비가 없어 열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고민 끝에 자신의 마지막 기차 승차권을 팔아 의사를 불러 파오나를 치료해준다. 사랑을 실천한 마르코는 더는 자신의 힘으로 엄마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하늘은 마르코를 도와 결국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엄마는 빈사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코의 얼굴을 보자 다시 힘을 얻게 된 엄마 안나는 용기를 내어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고 결국 건강을 회복한다. 마르코와 엄마는 함께 제노바로 돌아오는 배에서 활짝 웃으며 애니메이션은 끝났다.

엄마를 찾아 떠나는 마르코의 삶은 결국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사랑과 인정을 찾아 살아온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마르코가 찾아 떠났던 엄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결핍된 사랑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쉽게 얻어지는 사랑이 아닌 듯싶다. 마르코는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노잣돈인 기차표를 파오나의 생명을 살리는 데 바치면서 마르코의 여정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게 된다. 마침내 마르코는 자신의 여정에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엄마의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찾아 떠나는 우리 삶도 결국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야만 그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