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화 강요하는 정부, 실효성 있는 지원책 먼저

(가톨릭평화신문)
 
▲ 주교회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유튜브 캡처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은 집중적인 돌봄·보호가 필요한 중증장애인과 가족의 어려운 현실과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로드맵은 장애인의 삶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전환해 자립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200명 이상 대규모 시설은 정부의 거주 전환 조치를 우선 따라야 한다.

8월 2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대부분이 이번 로드맵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발제자인 대구대교구 이병훈(들꽃마을 원장) 신부는 “탈시설 로드맵을 보면 ‘누구에게 물어봤고, 누구를 위한 탈시설인가?’라고 묻고 싶다”며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증장애인 6035명 중에서 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한 사람은 2021명, 33.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연구보고서에는 탈시설 당사자 25명, 이들은 도와주는 25명을 인터뷰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정작 탈시설 당사자의 부모, 그리고 발달장애, 지체 및 뇌병변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 종사자에 대한 의견청취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도 탈시설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가진 자의 횡포”라고 말했다.

작은형제회 김재섭(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담당) 신부는 “보건복지부가 시설 입소 대기 장애인을 625명으로 집계했다”며 “현재 파악된 발달장애인 시설 입소 대기자가 용인시 330명, 수원시 250명이며 전국적으로 합치면 대기자만 수천 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권문제는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등 다른 곳에서도 발생하는데 장애인시설만 폐쇄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장애인시설이 폐쇄되면 기존 거주인들은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떠한 이유든 시설 입소를 원하는 장애인이 많은 상황에서 탈시설이나 시설 폐쇄를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이기수(둘다섯해누리 원장) 신부는 “발달장애인 중에서 시설에 들어와 있는 발달장애인은 10%에 불과하며 이들은 부모나 제삼자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탈시설을 한다며 데리고 나간 후 콧줄을 낀 채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사진을 보여준 뒤 “이들이 자립한다고 나가서 행복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신부는 “장애인 탈시설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30명 이상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탈시설이 기존시설의 폐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대표 김현아(딤프나)씨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에 따라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법인을 해체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증장애인들이 동의도 없이 자립주택으로 이소되거나 시설 정원을 줄이는 과정에서 문제 행동이 많은 장애인을 우선 퇴소시켜 미신고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30대 자폐성 중증장애인 아들의 폭력적 행동을 영상을 보여준 김 대표는 “탈시설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신체장애인들은 탈시설을 외쳐야 할 당사자가 아니다”며 “강제적 탈시설은 엄연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증장애인에게 시설 퇴소는 사형선고”라고 말했다. 이어 “이 땅에서 살 마음을 붙이고자 재작년 세례를 받고 정신장애인의 수호성녀인 딤프나로 세례명을 정했다”며 “성모님께 기도드리는 엄마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세상을 향해 정의의 종을 울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울먹여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앞서 주교회의 사회사목위원회 위원장 유경촌(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개회사에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장애인의 삶 속에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사회와 교회, 국가의 의무”라며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오늘 토론회가 장애인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한편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는 최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는 “로드맵은 일상생활 전반에서 상시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과 가족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지역사회 인프라가 미비한 상황에서 장애인 가족에게 돌봄·보호책임을 전가하고, 장애유형 및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증장애인 가족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이 지역사회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야 할 것”이라며 “상시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주거결정권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장애인 지원 정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