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89)선택할 수 없는 상황, 선택할 수 있는 감정 (중)

(가톨릭평화신문)


어느 정도 삶의 연륜이 쌓이다 보면 세상의 어떤 일도 자체로 불행하거나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격언은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늘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겪은 불행한 일이 오히려 다행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개인적인 사고체험은 사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자동차가 생각보다 크게 손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무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불행 중 다행’, 즉 은총을 체험한 것이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불행 중 다행’의 사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불쾌한 감정이 먼저 떠오르고, 감사의 마음이 따라왔으며, 그 이후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이 모두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건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이 사건을 자연적 사건으로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인격적 사건으로 해석하기 때문이었다. 자연적 사건이란 물리적 인과관계로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인간은 말 그대로 운에 따라 특정 사건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인격적 사건은 의식과 인격을 지닌 어떤 존재가 자유의지로 발생시킨 사건을 말한다. 즉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어떤 의지로 인해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적 사건으로 불행한 사건을 겪게 되면, 처음 기분은 부정적이나 그 이후 점차로 회복의 과정을 밟는다. 왜냐하면 그 사건으로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다 하더라도 원한을 품거나 화를 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맑은 하늘을 본 후 마음 놓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비를 흠뻑 맞았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재수가 없었다면서 처음엔 짜증을 낼 수도 있지만, 이내 그냥 지나가는 일로 잊어버릴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향해 화를 내고 자연을 향해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비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인격적 사건으로 불행한 사건을 해석하게 되면 아무리 긍정적인 해석을 하려 해도 부정적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격을 가진 존재가 의지를 가지고 개입한 사건은 분명 그 책임과 보상을 물을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 사건을 일으킨 대상을 향한 분노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분명 그 대상을 향해 책임을 묻고 단죄를 하였으며 보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 부정적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체험한 부정적 사건은 자연적 사건으로 해석될 경우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정적 감정이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이 인격적인 사건으로 해석될 경우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체험한 자동차 사고는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분명 자연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에서는 분명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은 감성계, 즉 변연계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분명 자연적 사건이라면 처음에 올라온 부정적 감정은 곧 사라져야 했다. 게다가 큰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감사의 마음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감정들은 복잡했다. 무의식적으로는 이 사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감사와 불만의 두 감정이 서로 병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이 사건을 자연적 사건으로 인식하면서도 인격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어떻게 인격적 사건으로 둔갑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 사건에 누가 개입되었다는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쉽게 합리적 판단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