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스라엘 성지에서 살면서 얻은 것

(가톨릭평화신문)
▲ 예루살렘 힌놈계곡에 위치한 ‘하텔 드마’. 사도행전에는 유다가 죽은 장소 ‘피밭’으로 기록돼 있고, 십자군시대에는 사형지로 쓰였다. 지금은 정교회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첫 아이가 돌이 지났을 즈음, 이스라엘에서 현지 가이드로 살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셨던 그곳에서의 삶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10년만 버텨보자며 시작했던 성지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1년 만에 끝이 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참 귀중한 것을 많이 얻었습니다.

선배의 도움으로 집을 구하고, 히브리어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성서와 전례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다시 공부했습니다. 대학 입시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성지에서의 공부에는 큰 보너스가 따릅니다. 도보로 30분이면 주님의 무덤 성당에 도달할 수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통제된 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 걸으면 주님 탄생 성당에서 울리는 성탄 음악회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께서 서로 만나 하느님의 은총에 기뻐했던 엔케렘은 주말 나들이 장소로 적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의 가이드 공부는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공부한 후, 가이드로서 첫 순례 팀을 맞았습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 팀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며 도착한 순례팀을 버스로 안내했습니다. 사실, 초보 가이드인 제가 함께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노련하고 해박하며 친절한 가이드를 만나는 것이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렇다보니 제가 생애 첫 가이드를 한다고 말씀드리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텔아비브 공항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버스로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그 1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진땀 나는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일주일이 넘게 그 한 시간을 위해 예행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해 드리고 집으로 향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앞으로 보낼 2주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나마 선배 가이드가 대부분 동행해 주시기로 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순례단은 이스라엘 순례를 위해 무려 1년간 2주에 한 번씩 만나 성경을 공부하고 준비하신, 24명의 미국 교포로 이루어진 팀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순례가 일주일 정도로 짧아졌지만, 당시에는 14박 15일 일정이 보통이었습니다. 구석구석 이스라엘 전체를 둘러볼 수 있으면서도 여유가 있는 일정이었죠. 오후 5시면 일정을 마치고 일찍 저녁 식사를 한 후, 그날 순례지에 관련된 성경 구절을 같이 읽었습니다. 미리 공부한 내용과 가이드의 설명을 비교하고 궁금한 것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난생처음 가이드를 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순례단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험이 후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매일매일의 시간이 고시생만큼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영어에 능통한 교포들이라서 길가의 작은 안내문 하나 소홀히 지나치지 않고 그 내용을 물어 오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그곳에 살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그 안내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요.

첫날 아침, 약속된 시간에 로비에 모인 분들이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을 쓰시는 두 분이 시간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방에 도착하니 한 분은 침대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고, 다른 형제님이 조금 긴장된 얼굴로 저를 맞으셨습니다.

“긴 비행 때문인지, 친구 컨디션이 안 좋네요. 하루 정도 쉬면 좋아질 듯합니다. 혼자 두기 어려우니 제가 곁에서 좀 지켜볼게요. 점심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첫 일정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던 저는 두 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로비로 내려가 모여있던 분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날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의아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총무를 맡은 형제님께서 점심시간에 제게 귀띔해주셨습니다.

“저희 순례팀은 원래 22명이었습니다. 그 두 분은 성당 근처 수도원 원장님께서 제게 따로 부탁하셔서 합류하게 되었어요. 다른 분들도 흔쾌히 허락하셨지만, 공항에서 처음 뵈어서 저희도 잘 모르는 분들이에요. 한 분은 안색이 좋지 않아 원래 건강이 나쁘신 게 아닌가 짐작만 했어요. 좋아지셔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순례단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두 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순례 도중에 호텔로 전화를 드리자 다행히도 좋아지고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만나 뵌 형제님의 모습도 아침보다 훨씬 좋아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식사 때에 두 분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좋지 않은 느낌에 방에 올라가 보니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형제님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셨습니다. 친구 형제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