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누가 네 이웃이냐?”

(가톨릭평화신문)
▲ 홍미라 수녀



첫서원 25주를 마칠 즈음 양팔에 마비가 왔습니다. 목 뒤의 동맥이 꼬여 피 순환이 안 되어 마비가 왔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다리가 마비되었다면 휠체어라는 이동수단이 있었을 텐데, 양팔이 마비되면 밥 먹고 씻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까지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시간 30분 긴 시간의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은 빨랐지만, 소임은 무리였고 수도회의 배려로 쉼터에서 요양하였습니다.

3개월의 요양을 마치고, 포천의 시골 마을에 옥탑방을 얻었습니다. 후배 수녀는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저는 시골 마을에서 지역사회복지를 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는 시기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가운데 몇몇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가정의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로 보이지만, 아이들을 알아 갈수록 어른들로 인한 상처로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폭력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아이들과 좀 가까워질 무렵 코로나19가 심해져 만남이 힘들어졌고, 때에 맞물려 저희는 옥탑방에서 의정부 빈민가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도시 안의 빈민가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곳이지만 정말 따뜻한 곳입니다.

후배 수녀가 공장에 간 사이 강추위로 버티지 못한 보일러가 터져버렸습니다. 보일러 수리를 신청하고 기사님이 오시기 전 차오르는 물을 퍼내기에 바빴습니다. 이웃집 어르신들께서 지팡이를 짚고 오셔서 물 퍼내는 저를 보고 이 엄동설한에 어찌하느냐며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셨습니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동네입니다. 바로 앞집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도심 속에서 이웃을 걱정해서 오시고, 문을 닫지 않고 열어 놓고 사는 동네가 수도권 안에 어느 곳이 있을까요?



홍미라 수녀(루치아, 인보성체수도회 서울인보의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