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가톨릭신문)
“수도사들은 허용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수도원을 지었고, 이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이 되었다.”

건축가 루이스 헨리 설리번(Louis Henry Sullivan)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말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말처럼, 건축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건축물을 세우고 이용한 시대와 사람들의 정신을 꿰뚫고 있다.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파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도원을 순례하며 수도(修道)영성을 ‘수도원’이라는 건축에서 읽어나간다.

책은 승씨가 수도원 등의 건축물을 순례하며 사색한 기록을 담은 건축 여행 에세이다. 수도원을 순례하면서 과거 방문했던 여러 건축의 기억을 더해 건축과 영성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탐구해나간다.

승씨는 서울시 총괄 건축가를 지냈고,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으로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건축가다. 그동안 칼럼 등 짧은 글의 모음이나, 건축 작품집들을 출간해왔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풀어낸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성’은 승씨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다. 승씨는 이미 마산교구 명례성지를 비롯해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하양교회, 사유원 등을 건축하며 ‘영성의 지도’를 그려나간 바 있다. 그 건축의 바탕에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를 넘어서는 ‘영성’에 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원 순례에서의 묵상도 삶의 근본, 영성을 찾으려하는 그의 끈질긴 건축철학에서 발현된다.

승씨는 책에서 자신의 건축철학을 투영해 수도원 건축의 모습을 전한다. 순례 중 촬영한 사진과 자료들은 현장감에 생생함을 더해줄 뿐 아니라 승씨의 묵상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해준다. 수도원이라는 영성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그의 사유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물들어나간다.

책은 승씨의 끊임없는 자기고백과 성찰을 담았다. 승씨의 순례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질문은 빌라도가 법정에서 예수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은 모든 순례자들을 순례의 길에 오르게 한 질문이요,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던져야 할 질문이다.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8)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