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희 대주교의 5·18 기억… 40년 전 아픔 그대로

(가톨릭평화신문)
 
▲ 윤공희 대주교(오른쪽)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보도제작국 김선균 부국장(왼쪽)과 대담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 윤공희 대주교(제7대 광주대교구장)는 1980년 5월을 어떻게 기억할까.

광주가톨릭평화방송(사장 이옥수 신부)이 5ㆍ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특별 인터뷰 ‘윤공희 대주교를 만나다-1ㆍ2부(기획·대담 김선균 보도제작국 부국장, 제작 양복순 PD)’를 제작했다.

특별 인터뷰 ‘윤공희 대주교를 만나다’는 윤 대주교의 출생부터 신학교 생활, 한국전쟁 당시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하게 된 과정과 당시 종군신부로 사목하면서 느꼈던 인간적인 소회, 로마 유학생활, 수원교구장과 광주대교구장 재임 시절 사목 성과 등을 담았다.

윤 대주교는 1980년 5·18 당시 제7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계엄군에 맞서 광주 시민들을 지키는 데 앞장서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윤 대주교는 인터뷰에서 70년 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가장 아픈 기억인 5ㆍ18에 대한 회고를 통해 총칼을 앞세워 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던 계엄군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제이자 한 인간으로서 무기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전했다.

윤 대주교는 특히 1980년 5월 19일 집무실 창문 너머로 계엄군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며 피를 흘리고 있던 시민을 보고도 뛰어 내려가 말리지 못한 것을 두고 “4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강도에게 당해 쓰러진 사람 옆을 비켜 지나가는 사제가 바로 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주교는 “5·18은 우리 민족이 역사 안에서 겪은 큰 시련이었다”며 “우리는 이 시련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하게 권위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권위는 하나의 봉사로써 받는 것이지 이를 행사하거나 올라서서 지배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4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에서 5ㆍ18을 왜곡하고 헐뜯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동기를 알 수가 없다”며 “그들은 어떤 사실적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주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빌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고통 중에도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 모두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송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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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