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감정 표현하는 무용…장애 아동도 무용가 될 수 있죠”

(가톨릭신문)

“흔히 ‘무용’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몸을 지닌 무용수가 멋진 춤을 선보이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무용은 누구에게나 열린 예술이에요. 장애를 가진 이건, 가지지 않은 이건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필로스하모니 임인선 이사장(유스티나·수원교구 성남 위례성데레사본당, 대림대 스포츠지도학과 교수)이 오랜 시간 장애 학생들과 함께하며 얻은 깨달음이다.


30여 년 전, 무용을 전공한 그는 석·박사 과정을 통해 ‘정신 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용 요법’이라는 주제를 연구했다. 무용을 접한 환자들의 정서가 점차 안정되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로 확대됐다. 


심리적, 신체적으로 다양한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무용을 접할 기회를 나누고 싶었던 것. 이후 그는 2005년 그가 교수로 재직 중이던 대림대에서 특수체육교실을 개설하고 27명의 학생을 단원으로 받았다.


“1년이 지나 수료식을 하는데 강의실이 울음바다가 됐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무용 수업을 들은 아이들에겐 무용 수업이 단순한 교육 이상의 시간이었던 거죠.”


수료식이 끝난 후 세 명의 학부모가 찾아와 그에게 청했다. “아이들이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무용단을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특수체육교실을 모태로 한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이 2007년 만들어졌다.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라는 단어를 붙였다.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현재, 많은 이의 뜻과 도움이 모인 덕분에 필로스하모니로 성장해 무용단뿐만 아니라 연극단, 축구단, 특수체육단, 우드볼단 등이 운영되고 있다.


배움이 더딘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은 일.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까지 꼬박 4~5년의 시간이 걸린다. 매일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하루하루 더 나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시 나아갈 원동력이자 가장 큰 행복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2015년 소록도에서 공연했을 때의 일이다. 공연이 끝난 후 한 한센병 환자가 눈물을 흘리자, 학생이 다가가 장갑 낀 손을 꼭 잡고 “울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얼마 전 일이에요. 한 친구가 공연에서 부채춤을 추다가 치마에 걸려 넘어졌어요. 무대 뒤에서 지켜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때 친구의 뒤에 있던 학생이 손을 잡고 묵묵히 일으켜 줬어요.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공연이 이어졌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부터 비영리 단체를 이끄는 것까지 숱한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예전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저에게 맡기셨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아이들이 저를 채워 주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알았죠. 따듯한 감동을 만들어 내고, 이를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귀한 일에 저를 선택해 주셨다는 게 기쁘고 감사할 뿐이에요.”


그의 꿈은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많은 장애 아동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는 것. “지금 무용단엔 창단 때부터 활동한 친구가 있어요. 이제는 어엿한 수석이자 보조 교사로 어린 친구들을 이끌어 주고 있죠.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도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싶어요.”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