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평범한 이를 통해 이어져 왔다

(가톨릭평화신문)

가장 평범한 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대다수를 이루는 서민이 능동적이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늙고 병들어 간다. 뛰어난 이들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기술을 정련하여 대중을 이끌지만, 대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중 제32주일은 ‘평신도 주일’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단순히 각각 ‘사람들’(사도 5,35), ‘수많은 사람’(사도 11,26)으로 언급되었으나, 점차 교회가 커지면서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를 통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했으며, 이는 교회의 살과 피인 평신도가 갖는 가치와 능력을 천명한 것이다. 사제만 있고 이를 따르고 지탱하는 평신도가 없는 교회를 상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음악도 평범한 이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이름없는 사람들이 초기 교회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기록하였으며,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이들이 만들었던 음악을 집대성하였다. 이 단순한 선율의 성악곡은 세속 리듬을 타고 확산되고 발전하였으며, 800년 후 현존하는 최초의 기악음악인 13세기 춤곡 에스탕피(estampie)에서도 초기 찬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에스탕피

//youtu.be/Sn6QOJahjr4?si=c4XV8WSaWKpGJPAr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 대가들은 당시 대중의 취향을 읽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바흐·헨델·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슈만·베르디 등은 당대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려 노력했다. 처음부터 이들이 음악의 역사를 바꿀만한 결과물을 작곡한 것이 아니다. 비제나 로시니 등 짧은 시간만 활동한 작곡가들의 경우 그들의 작품이 곧 그 시대의 대표작이다.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youtu.be/Q4qfGJt6I3g?si=njodYy-jfjoOlS-d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만물박사’

//youtu.be/LxyoRYUk_9U?si=a1aEMBQFOZiTLZUb

뛰어난 독주자만을 키워내는 시스템으로는 훌륭한 음악문화를 조성할 수 없다. 말석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오케스트라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앞에 선 리더를 동경하지만, 평범한 우리가 없으면 누구도 리더가 될 수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대표한다면서 모차르트를 질투했지만, 모차르트를 인정한 평범한 이들이 없었으면 그가 천재임을 당대인들이 알았을까?

영화 ‘아마데우스’ 엔딩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조성진 연주)

//youtu.be/t9d3Q8l8rMM?si=T43ehl-tf33fRmJR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