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커지는 신앙과 음악
(가톨릭평화신문)
가난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따라다니는 아픔이자 상처다. 불완전한 사회구조는 필연적으로 빈부 격차를 만들어냈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행복하게 잘사는 곳은 ‘낙원’이라는 환상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같은 동네에서도 빈부 격차가 있지만 국가 간의 차이는 ‘넘사벽’이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가난을 업으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이런 걱정에서 많이 벗어났다. 195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것은 판타지 소설에서 소재로 사용해도 용납되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이 그렇게 가까운 과거인데도 다른 나라의 힘든 이들을 보지 못하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선포한 이유도 같을 것이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하는 기준이 단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에만 국한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님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신랄하고 직접적이다. 물질적인 가난은 노력 여부에 따라 극복할 희망이 있지만, 마음이 가난한 것을 채우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만족을 모르며, 남을 도와주는 것을 싫어하고 이기적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고 하신다. 이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성경의 원전을 살펴봐야 한다.
사실 ‘마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프뉴마티’(pneumati)이며 ‘영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영혼’이 가난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프토코스’(ptochos)’, 히브리어로 ‘에브욘’(ebyown)’이라고 하는 ‘가난’은 ‘도움을 갈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목마른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아브레우 박사(José Abreu)가 클래식 음악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발굴해 보고자 1975년 시작한 교육 시스템이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2010년 기준 190여 개 센터, 26만여 명이 가입된 조직으로 성장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세계적 음악가로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Edicson Ruiz) 등을 꼽을 수 있다. 나눌수록 커지는 것은 신앙과 음악이다. 이들의 행보는 다음 세대에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가치를 전파한다. 도움을 갈구하는 이들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기적이다.
두다멜이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5번
//youtu.be/SSypujlLlNI?si=zDGMsQYKfj_rf06f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