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우고 주님 자리 마련하는 영성 「공허에 대하여 」

(가톨릭신문)

“삶이라는 연못에 뛰어들 때마다 굳이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아도 깊고 단단하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258쪽)


끊임없이 채우는 시대다. 일과 계획으로 일정을 채우고, 물건과 감정으로 공간을 채우며, 관계와 욕망으로 마음을 메우지만, 그렇게 채워 넣을수록 삶은 오히려 텅 빈 듯 공허하다.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영성 지도자, 심리치료사인 저자 토마스 무어는 이렇게 더 많이 가지려는 삶이 우리를 공허하게 만든다면, 반대로 비워낼 때 비로소 진정한 충만이 깃든다고 역설한다.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충만의 시작”이라 단언한 무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필리 2,7) 인간이 되신 ‘케노시스’의 영성을 비롯해 불교의 ‘무(無)’, 도가의 ‘무위(無爲)’등 동서양의 영성 속에서 ‘비움의 지혜’를 탐구한다.


책에는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잔잔히 흘러든다. 반지 없는 손가락, 화살 없는 활, 텅 빈 좌석 같은 내용들은 “비어 있음이야말로 자유의 공간”임을 드러낸다.


그는 공허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신비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사색한다. “조용히 사는 법을 익히라”는 조언은, 곧 “마음 안에 하느님이 머무실 자리를 내어드리라”는 초대처럼 들린다. 이는 자기 생각과 가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진정한 자기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의 알림과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멈추기조차 어려운 현대인에게 이런 그의 메시지는 현실적이다. “행복은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깝고, 성취라기보다는 선물에 가깝다”, “삶은 채워지기보다 더 많이 비워진다”는 말들은 철학적이지만 동시에 단순하면서도 깊게 다가온다.


“마음속에도 편히 쉴 수 있는 빈 의자를 준비하세요. 그래야 누군가 다가왔을 때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299쪽) 마지막 장에서 들려주는 빈 의자에 대한 단상은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을 위한 자리로도 읽힌다.


우리가 공허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순간을 급히 채우려는 충동을 멈추는 것이다. 저자는 친구가 약속에 오지 않아서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나, 말을 삼키며 침묵을 지키는 순간 등 일상의 비움 속 장면들을 작은 명상처럼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추천사에서 “이 책이 다양한 예를 들어 소개하는 공허함이란 조금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고 온전한 채움을 위한 비움, 참된 자아와 이웃을 더 잘 만나기 위한 물러섬을 말한다”며 “공허에 대한 그리움만으로도 영혼의 자유를 얻는 책”이라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